- 일제 잔재 조선식산은행 건물로 등록문화재 지정, 유무형적 가치
SC제일은행 여수지점으로 사용돼왔던 조선식산은행 여수지점건물 |
여수시 중앙동의 일제강점기때 설립된 제일은행 여수지점 건물이 매각될 형편에 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말까지 조선식산은행 여수지점으로 사용해오던 건물이다. 여수 시내에 있는 일제강점기 건물 중 비 주거용 건물로는 보기드문 건물로 2005년 등록문화재 170호로 지정됐다. 따라서 여수시 등록문화재인 중앙동 구 SC제일은행에 대한 매각설이 일면서 철거나 방치가 아닌 역사적 보존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지역사회 여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
SC제일은행(스탠다드차티드은행)은 구 중앙지점을 지난 17일 여천지점과 통합하면서 사옥을 폐쇄했었다. 은행 측이 일제강점기 시대 조선식산은행 여수지점이었던 이 건물을 일반에게 매각할 방침으로 알려지면서 문화재 보호를 요구하는 반발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 건물은 여수가 항구 도시로서의 기능과 식민지 상공업의 상황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건축물 중의 하나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간판을 붙인 벽면에는 ‘조선식산은행’이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조각돼 있으며,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면 사각 기둥은 장식이 없으며, 좌우 대칭의 구성을 이뤄 금융기관으로써의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다. 내부는 부분 2층 구조로 현재 막혀 있는 1층 영업장 천장 속에는 신축 당시의 난간과 기둥의 장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건물이 역사적 가치를 갖는 이유는 1930년대 지역에선 최초로 일제에 의해 합리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으며, 당시 일본 교역과 수산업이 융성했고 국가 금융정책을 주도했던 건물로써 지역사의 척도로 가늠되기 때문이다.
여수시는 건물의 역사적 보존가치를 인지하고 건물매입을 위해 제일은행 측과 현재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SC제일은행 본사에서도 구체적인 처리 방침을 세우지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 “건물의 활용방안을 놓고 긴밀히 협의하고 있고, 민간 매각이 아닌 공공매각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도록 협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식산은행은 1918년 설립되어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조선 수탈의 교두보가 됐다. 1926년에는 독립운동가 나석주(1892-1926) 의사에 의하여 폭탄투척 등 항일운동의 표적이 됐던 식산은행은 전국에 60여개에 달하기도 했다.
전남 여수시 중앙동에 소재한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여수지점은 (주)한국스탠다드차타드제일은행의 소유다. 이 건물은 1918년에 지어졌다가 1942년에 재건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관 디자인이 상자형의 모던스타일로 은행건축물로는 선구적인 외관을 채용한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광복 이후에는 한국식산은행으로 이름이 변경됐다가 1954년 한국저축은행, 한국산업은행, 제일은행 등으로 변해왔다. 현재는 스탠다드차타드 여수지점에서 여수출장소로 축소되어 운영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내건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 간판 |
여수 옛 식산은행 건물은 보존상태도 좋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만큼 현상태를 보전하여 역사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로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여수지역의 금융변천사를 한눈에 알 수 있고, 지역사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경우의 건물로 1907년에 만들어진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2008년 복원되어 군산근대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옛건물을 매각하고 허무는 것이야 경제적인 논리지만 일단 건물이 없어지고 나면 그 자리는 잊혀지고 만다. 연간 1,300만명이 방문하며 문화관광의 메카로 활발히 움직이는 여수시는 옛 식산은행 여수지점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내고 있지 않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은행 건물로는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유형문화재 164호), 구 산업은행 대전지점(등록문화재 19호), 구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등록문화재 164호)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김을현 기자 somchane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