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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꿈’을 꾸고 싶다

기사승인 2024.08.07  16:3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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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

올해는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서거 15주년이 되는 해다. 후광 김대중은 1924년 전남 신안 하의도 후광리(後廣里)라는 조그만 섬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 김씨이고 아버지는 김운식, 어머니는 장수금으로 김운식의 둘째 부인이었다. 김대중이 어렸을 때 아버지는 마을 이장을 했고, 어머니는 후광리 바닷가에서 따로 살면서 뱃사람을 대상으로 밥장사를 했다. 김대중은 훗날 고향 마을 ‘후광(後廣)’을 자신의 아호로 삼았는데, 그의 통근 리더십과 넉넉한 인품의 형성은 ‘후광’이란 한자 뜻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천사(1004)의 섬’으로 불리는 신안은 일 천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섬나라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바다를 무대로 어업을 하면서 살아간다. 예전에는 이런 바다 사람들을 두고 뱃놈, 섬놈, 물짠놈, 갯땅쇠 등으로 불렀다. ‘물짠 놈’은 바닷가 짠물에서 사는 사람이란 뜻이고, ‘갯땅쇠’와 ‘뻘짓’은 갯벌에서 벌어 먹고사는 사람을 일컫는 비속어다. 우리 말에서 ‘놈’ ‘쇠’ ‘치’는 천민을 일컫는 말이다. 마당쇠, 구두쇠, 갯땅쇠, 양아치, 동냥치, 갓바치 등이 그 예다.

 

한반도의 끝자락 전라도, 그것도 하의도라는 섬 구석에서 태어난 김대중은 고고지성(呱呱之聲)의 순간부터 뱃놈, 물짠놈, 전라도 갯땅쇠라는 속칭들이 따라다녔다. 비록 변방의 찐 흙수저로 태어난 김대중이지만, 오늘날엔 한국이 낳은 거인으로 평가하는데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후광 김대중이 걸어온 삶을 일언폐지(一言蔽之) 한다면 그것은 ‘불후의 역사’이다.

최영태(전남대 명예교수)의 장편 소설<거인의 꿈>을 통해 섬 소년 김대중이 어떤 영향으로 그처럼 원대한 꿈을 꾸고 실천해 왔는가를 엿볼 수가 있다.

하의도는 목포에서 배로 3시간 정도 걸리는 외딴 섬이다. 하의도 서남쪽으로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죽도라는 무인도가 있다. 섬 모양은 사자가 웅크린 형태이고, 절벽은 영락없이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다. 섬 사람들은 이것을 ‘사자 바위’ 또는 ‘큰 바위 얼굴 섬’이라고 했다.

하의보통학교 다닐 적에 담임 선생은 학생들에게 소설 <큰 바위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큰 바위 얼굴>은 미국의 유명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이 1850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어니스트는 남북전쟁 직후 어렸을 적, 어머니로부터 ‘큰 바위 얼굴’ 전설을 듣고 자란다. 마을에 사람 얼굴 형상이 새겨진 큰 바위를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훗날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염원이 담긴 전설이었다.

소년 김대중은 어니스트처럼 큰 바위 얼굴과 같은 훌륭한 인물이 되어 나라와 사회를 위해 살아가리라 다짐하면서 거인의 꿈을 꾸며 성장해 간다.

김대중과 어니스트가 큰 바위에 영감을 얻고 꿈을 이루어 간다는 스토리는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풍수지리 인문학자 조용헌 교수에 의하면 기가 센 영적 지도자나 도사들이 도를 닦을 때 기도발이 잘 받는 곳으로 바위산과 바위 동굴을 선택한다. 바위는 강한 땅의 기운이 모인 곳으로 접신(接神) 또는 계시(啓示)를 잘 받는데, 그 이유는 바위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사람의 뇌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손꼽는 수도(修道) 성지는 애리조나주에 있는 세도나라는 곳이다. 장광(長廣) 100여리 정도를 붉은 바위산이 둘러싸고 있어 강력한 영감을 얻는다고 여겨져 각국의 명상가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큰 바위에서 영감을 얻은 인물의 탄생 설화는 서울 양천구의 양천 허씨의 시조 허선문이 태어난 공암(孔巖)과 나주의 남평문씨 시조 문다성이 탄생한 문암(文巖) 바위가 있다. 영광 백수읍 구호동 마당바위는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이 5년 동안 기도 끝에 산신을 만나 깨우침을 얻은 곳이다. 전북 익산 장암마을에는 조선 중기의 청백리 송영구의 망모당이 있고, 그 옆에 예사롭지 않은 마당바위(場巖)가 있다. 풍수에서 마당바위(너럭바위)는 산신이 내려와 노는 길지로 여긴다.

‘큰바위얼굴’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산이 있다. 영암 월출산이다. 수많은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골산(骨山) 월출산의 모습은 금강산을 닮았다 하여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산 정상 부근에는 9개의 우물이 있는 봉우리, 구정봉(九井峯)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영암’의 지명유래를 보면, 신령스러운 바위 때문에 큰 인물이 나온다는 전설이 있다. 월출산에 3개의 동석(動石:흔들바위)이 있었는데, 이 바위의 기운으로 조선에 큰 인물이 나온다고 여긴 중국인들이 산에 올라와 바위들을 모두 아래로 밀어뜨렸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스스로 올라와 제자리에 선 것을 보고 놀라서 신령스런 바위 곧 ‘영암(靈巖)’이라 했고, 훗날 고을 이름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월출산 중심에 자리한 ‘큰 바위 얼굴’은 영암을 찾는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는 바위다. 큰 바위 얼굴은 2009년 1월 박철 사진작가가 처음 발견을 하면서 세상에 알려져 왔다. 큰 바위 얼굴의 기를 받은 탓인지 영암에는 기가 센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일본 아스카 문화의 시조 왕인박사, 풍수지리설의 대가 도선국사, 고려 개국공신 천문역술관 최지몽, 삼당시인 고죽 최경창, 가야금 산조 창시자 악성 김창조, 항일 독립운동가 낭산 김준연 등이 있다. 바둑계의 황제 조훈현과 트로트 천재 가수 하춘화도 영암 출신이다.

영암의 구림은 2천 년이 훨씬 넘은 유서 깊은 역사 마을로 왕인박사와 도선국사 등을 배출한 고을이다. 천 가구가 문필봉을 받들고 있다는 뜻으로 천호봉필(千戶奉筆)의 형국을 갖고 있다. <도선비기>에도 월출산 구정봉의 기운으로 세상을 다스릴 제왕이 나온다고 했다. 난세일수록 불세출의 인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동서고금의 간절한 염원이다.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김대중 선생을 가리켜 사람들은 ‘인동초(忍冬草)’와 같다고 했다. 일찍이 민주화 운동이라는 형극(荊棘)의 길에 뛰어들어 사람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평생을 헌신한 김대중은 사형선고와 망명 등 수많은 간난신고(艱難辛苦)를 이겨내고, 마침내 민주·인권의 상징으로 20세기 현대사에 길이 남을 불세출의 거인이 되었다.

전라도 나주 벽촌에서 태어난 필자, 소년 시절로 다시 한번 돌아갈 수 있다면 나도 ‘거인의 꿈’을 꾸고 싶다.  

조상열 발행인 ddmh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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