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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빚어낸 신라인의 ‘영원한 삶’

기사승인 2025.04.01  14: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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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유물유적] 신라인의 내세관 담긴 국보 ‘토우장식 항아리’

국보 토우장식 항아리 2점. 좌측은 1970년대 경주 계림로 미추왕릉지구 30호 고분에서 출토되었고 우측 항아리는 경주 노동동 11호 고분에서 출토 됐다. 이 항아리 2점은 1978년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인들은 ‘죽음’이란 끝이 아닌 새로운 삶을 위한 ‘여정’이라 생각했다. 죽어서도 현세의 삶이 계속 이어진다는 ‘계세사상(繼世思想)’을 믿었던 고대인들은 죽은 사람들이 사후세계에서 영생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각종 형상의 의례용품을 만들어 망자와 함께 무덤에 넣었다.

1922년 나일강 서쪽에서 3300여 년 전에 죽은 고대 이집트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견됐다. 무덤에서는 왕의 미라와 함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난 양의 부장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부장품들은 현세의 삶을 죽어서도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영생의 염원을 담고 있다.

1974년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도 마을 청년들이 우물을 파던 중 2200여 년 전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의 무덤을 발견했다. 거대한 궁전을 연상케 하는 진시황릉 주변부에서 황제를 지키고 있는 수많은 병사들과 말의 모습을 흙으로 구워 만든 ‘병마용(兵馬俑)’이 발견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우리의 고대국가 신라와 가야에는 무덤에 많은 부장품을 넣고 후하게 장례를 치르는 ‘후장(厚葬)’ 풍습이 있었다. 심지어 왕이나 신분이 높은 귀족이 죽었을 때 그의 아내나 신하 또는 종들을 함께 ‘순장(殉葬)’하기도 했다. 이런 풍습도 계세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철도공사 중 발견된 ‘신라인의 삶과 죽음’

1926년 경주 황남동 고분군 철도공사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토우와 토기들  ⓒ국립중앙박물관

전 세계 공통적으로 사후 세계에서의 부활과 영생을 바라는 내세관이 담겨 있는 유물과 유적들이 발견 됐듯이 고대 신라에서도 현세의 삶이 계속 이어지길 기원하며 장송의례를 치렀던 흔적이 발견됐다.

신라시대 유물 하면 맨 먼저 금관이나 금제 허리띠, 금팔찌 등 아주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런 유물은 극소수 왕족이나 귀족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특별한 유물이다. 그렇다면 평범하게 살았던 신라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1600여 년 전 신라 보통사람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 그 수수께끼를 풀어줄 유물이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26년 5월 경주 도심 황남동. 황남대총이 있는 대릉원의 대형 고분들 사이에서 인부들이 땅을 파고 있었다. 경동선이 지나는 경주역 개축 공사에 필요한 흙을 파서 약 1km 떨어진 경주역 현장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고대 신라인의 옻차림. 남자는 바지저고리를 입고 상투를 틀고 있다. 여성은 저고리에 주름치마를 입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족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모습의 신라의 여인. 마치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무릎에 안고 슬퍼하는 미켈란 젤로의 ‘피에타’와 비슷한 구도라서 ‘신라의 피에타’라고 부르고 있다. 3cm 정도의 작은 토우지만 그 울림은 매우 크다 ⓒ국립중앙박물관

땅을 파는 과정에서 소형 고분들이 발견됐다. 인부들은 조선총독부에 신고했고 공식적인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발굴이라 해봤자 무너지는 흙더미 속에서 유물을 쓸어 담는 수준이었다. 공사 현장에서 엄청나게 많은 토기와 토우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아쉽게도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토우(土偶)란 말 그대로 흙으로 만든 작은 인형을 말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들의 형상을 본떠 만든 작은 상형 토기를 포함한다. 발굴된 토우는 대부분 토기에 붙어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특히 굽다리 접시의 뚜껑 손잡이 주변에 붙어 있는 장식용 토우와 별도로 독립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것들도 많았다.

이러한 토우들은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이전인 5~6세기 초에 주로 만들어진 것들로 대략 2~10cm 정도의 작은 크기로 손으로 흙을 조물조물 빚어서 만들었다. 인물을 형상화한 토우를 보면 남자는 바지저고리를 입고 상투를 틀고 있으며 여자는 주름치마에 저고리를 입고 있다.

신라인의 탄생. 출산 중인 여성의 입과 눈이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다. 출산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또한 사냥을 하거나 고기를 잡는 사람, 춤을 추면서 여흥을 즐기는 사람, 신라금이나 비파·피리 등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가족의 시신을 앞에 두고 죽음을 슬퍼하는 여인 등 신라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 이 중에서도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이나 과장된 성기를 드러내 놓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아주 이색적이다.

이처럼 성기를 표현하거나 성행위를 하는 모습의 토우를 만들어 무덤에 넣었다는 것은 죽은 사람이 천상에서 부활하여 영생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당시 신라 사람들의 ‘개방적인 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신라인들의 개방적 성문화에 대한 기록은 여러 역사서에 자주 등장한다.

이쯤 해서 여담 한마디 하고 가자. 일연 스님이 쓴 역사서 <삼국유사>의 기록에는 신라 지증왕의 성기 크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왕은 음경(陰莖)의 길이가 한 자 다섯 치(45cm)나 돼 마땅한 배필을 구하기 어려워 사자(使者)들을 삼도(三道)에 보내 배우자를 구했다 … ”라는 기록이 있다.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남녀 토우. 남자의 성기가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성기를 과장되게 표현한 남자 토우.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며 원시시대 때부터 전래된 남근숭배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삼국유사>에는 “지증왕의 음경(陰莖) 길이가 한 자 다섯 치(45cm)나 된다”라는 기록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는 지증왕의 강력한 왕권과 권위를 남근에 빗대어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원시시대부터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며 생겨난 ‘남근숭배 사상’은 민속신앙 형태를 띠며 여러 가지 버전으로 오늘날 까지도 전래되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정리하자면, 신라 토우를 통해서 우리는 1600여 년 전 평범하게 살았던 신라인들의 일상과 내면을 엿볼 수 있다. 대개 이런 토우들은 죽은 사람들이 현세의 삶을 사후에서도 계속 이어가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망자와 함께 무덤에 넣는 껴묻거리(부장품)로 사용한 의례용품이다.

신라인의 성과 사랑... 국보 ‘토우장식 항아리’

970년대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30호분에서 출토된 국보 토우장식항아리 ⓒ국가유산청

황남 고분군에서 토우들이 대거 발견되고 50여 년이 지난 1974년. 박정희 정부에서는 경주 관광종합개발의 일환으로 경주 계림로 미추왕릉지구 정화사업을 시작했다. 계림로 30호 무덤으로 지정된 고분의 발굴작업에서 다양한 형태의 토우와 함께 높이 34cm, 구연부 지름 22.4㎝의 항아리 한 점이 출토됐다.

항아리는 밑이 둥글고 구연부는 밖으로 약간 벌어진 채 직립(直立) 되어 있다. 목 부분에 4개의 돌출선을 돌렸고 몸체는 2 등분하여 문양을 새겼다. 항아리 목부분에 5cm 정도의 장식용 토우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규칙적으로 5개의 선과 동심원이 새겨져 있다.

그 사이사이에 신라금(新羅琴)을 타고 있는 배부른 임산부, 새·오리·물고기·거북,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 온몸으로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남녀 등 다양한 형상의 토우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목주위를 빙 둘러서 장식되어 있다.

목주위에 작은 토우들이 장식되어 있다. 그중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 임영열

웃고 있는 듯한 여성의 표정이 압권이다. 남자의 표정이 사뭇 궁금해진다 ⓒ 임영열

그중에서도 백미는 대담하게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담긴 토우다. 한 여인이 엉덩이를 뒤로 쭉 뺀 채 엎드려 있고 뒤쪽에서 남자(머리 부분과 오른쪽 팔은 파손된 상태)가 커다란 성기를 내밀며 다가가고 있다. 마치 ‘19금 베드신’을 보는 듯 민망하다.

무엇보다 히죽 웃고 있는 듯한 여인의 표정이 압권이다. 남자는 어떤 표정일까. 사뭇 궁금하지만 아쉽게도 남자의 머리 부분이 파손된 상태라서 살펴볼 수는 없으니 마음껏 상상해 보시라. 상상은 자유다.

농담이지만 이 항아리는 ‘미성년자 관람 불가 유물’로 지정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모르긴 해도 이처럼 에로틱한 장면이 입체적으로 담긴 문화유산은 이 항아리가 유일할 듯하다.

국보로 지정된 토우장식 항아리는 2점이다. 또 다른 항아리도 같은 시기 경주 노동동 11호 고분에서 발견됐다. 높이 40.5cm 구연부 지름 25.5㎝ 크기로 계림로 무덤에서 발견된 항아리 보다 약간 크다.

경주 노동동 11호 고분에서 출토된 또 다른 국보 토우장식항아리. 뱀이 개구리를 물고 있는 장면이 3곳 있고 그사이에 2명의 남자가 성기를 드러내고 지팡이를 들고 서있다 ⓒ국가유산청

항아리의 구연부는 밖으로 약간 벌어진 채 직립이 되다가 끝부분에서 안으로 많이 꺾어졌다. 굽는 과정에서 높은 열을 견디지 못하고 휘어진 것으로 보인다.

목 부분은 2개의 돌출선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각 한 번에 5개의 선을 이용한 물결무늬를 겹쳐서 새겼다. 그 사이사이에 원을 찍어 문양을 표현하였고 몸체에도 역시 5선을 이용한 물결무늬를 새겼다.

이 항아리 역시 목부분에 토우들이 장식되어 있지만 계림로 30호 항아리에 비해 그 수가 적은 편이다. 뱀이 개구리를 물고 있는 장면이 3곳 있고 그 사이에 2명의 남자가 지팡이를 들고 서있다.

성기를 드러내놓고 있는 남자 ⓒ국가유산청

남자들은 각자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놓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샤머니즘으로 보고 있다.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은 남녀 간의 성교 행위를 표현한다고 해석한다. 뱀은 성장할 때 허물을 벗고 겨울잠에서 다시 깨어나 생명을 이어간다. 그렇기에 옛사람들은 뱀을 끈질긴 생명력으로 죽은 이의 부활과 영생을 돕는 존재로 인식했다.

이렇듯 무덤에서 발견된 토우장식 토기에는 죽은 사람이 천상에서도 현세와 같은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신라인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또한 삶과 죽음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 동전의 양면처럼 죽음은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진다는 고대인들의 내세관과 연결되어 있다. 이 항아리 2점은 1978년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기사는 격월간 문화매거진 <대동문화>147호(2025년 3, 4월)에도 실렸습니다.

임영열 기자 youngim1473@hanmail.net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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