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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 은폐된 기억의 호출

기사승인 2018.09.18  12: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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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2018광주비엔날레 작품 ‘별자리’

메인 전시. 이강하 '월출산' 프린트, 정선휘 작품 프린트 설치

밤 7시 (구)국군광주병원의 9월의 밤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38년 동안 은폐되어 있던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사적지 23호인 (구)국군광주병원이 예술의 힘을 빌어 드디어 문이 열렸다. 잠겨진 철문 앞에 서 있던 20여명의 관람객들은 도슨트의 안내를 받아서 (구)국군광주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구)국군광주병원은 1980년 5⦁18당시 계엄군들에 의해 광주시민들이 끌려와 치료와 함께 취조를 받았던 곳이다. 세월이 흘러 건물은 폐허가 되었지만 그날의 상처를 기억에서 지워낼 수는 없다. 찢겨진 광주가 회복되지 못한 채, 숨죽이며 은폐돼 있었다.

태국 작가 ‘아피찻퐁 위라세타군’ 감독은 2018광주비엔날레 <GB 커미션-(국)국군광주병원, 별자리>라는 제목의 장소특정적 전시 설치 공간으로 (구)국군광주병원을 선택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인식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

‘아피찻퐁 위라세타군’ 감독은 (구)국군광주병원이 사적으로서 중요한 지점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공간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관람객이나 시민들에게 지금의 상태를 기억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그는 역사적 장소 자체의 보존을 중요시 여기며 변형 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전시 시작. 어둠에 쌓여 있는 국군광주병원

5분여동안 잡풀이 우거져있는 병원을 걸어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작품이 설치돼 있는 건물로 들어섰다. ‘별자리’에는 한국 작가 이강하 화백과 미디어아티스트 정선휘의 작품이 설치돼 있었다. 기자는 이강하 작가의 가족인 이정덕 이강하미술관 명예관장, 이선 학예연구원 등과 함께 전시를 관람했다.

‘별자리’는 (구)국군광주병원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건물이었다. 작품 설치는 2층에 되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 한발 한발 가파른 계단을 딛고 2층으로 올라섰다. 드디어 2층에 도착했다. 건물 전체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발전기를 이용해 빛을 만들었다고 한다. 긴 복도가 나타났고 양 옆으로 사각의 방들이 있었다. 복도는 희부윰한 빛 속에서 그 정체를 드러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군’ 감독의 이번 ‘별자리’ 작품의 가장 큰 모티프는 ‘빛과 그림자’, ‘그림자의 그림자’라고 했다. 전시는 병원 내부에 있었던 휴식 공간인 당구대에서 모티프를 얻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태국 출신의 불교 신자로 유령의 존재를 믿는 ‘아피찻퐁 위라세타군’ 감독은 ‘고스트볼’이라고 명명되어진 네 개의 당구공으로 전시의 서사를 구성했다.

작가에게 영감을 준 당구대

‘고스트볼’은 설치인 듯 아닌 듯 무심하게 놓여져 있다가,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그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작가는 전시장 전체에 ‘고스트볼’ 네 개를 설치했다. 그 네 개의 ‘고스트볼’이 전시의 세포이다.

‘아피찻퐁 위라세타군’ 감독의 ‘별자리’는 “아직도 컨템포러리가 우리에게 던질 감각의 충격이 남아 있을까”라는 우문에 답을 주었다. ‘별자리’를 보면서 오감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어스름한 빛, 시각’ ‘먼지의 냄새, 후각’ ‘히치콕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그로테스크한 음악, 청각’ ‘이강하의 미학적이며 장엄한 월출산과 정선휘의 피로에 찌든 현대인의 선명한 대비, 시각’ 그리고 기억을 깨어나게 했다.

기자는 (구)국군광주병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희끄무레한 기억들이 더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모든 것이 밝혀져서 선명해졌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2007년 국군광주병원이 함평으로 옮겨간 후 폐허로 남겨져 있던 건물의 창문은 모두 깨져 있었고 철근은 누군가가 모두 떼어가 버렸고, 건물 안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커튼이 쳐진 방으로 들어섰다. 5⦁18의 은폐된 기억이 떠오르면서 묵직한 슬픔이 밀려왔다. 그 누구도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들이 그 빈 공간에 가득 차 있었다.

커튼이 있는 방

태국 출신의 작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은 건축학을 전공한 후, 1997년 시카고예술대학에서 영화 전공으로 졸업했다. 그는 서른 두살이던 2002년 ‘친애하는 당신’으로 칸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열대병(2004)’으로 심사위원상을, ‘엉클 분미’로 2014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젊은 거장 반열에 올랐다.

그는 20여년동안 영화, 단편, 비디오아트, 사진 설치 미술 분야에서 작품 활동을 전개했다. 그의 사색적 작품 세계는 시적 접근법을 수용하고 현대 세계의 인식, 개인적 경험과 기억, 사회적 현상 및 고국의 정치적 격변을 아우른다.

고스트볼이 있는 풍경

그는 전시 컨셉의 하나로 폐허처럼 방치된 병원 내 공간에서 조각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데 주력했고, 이곳이 중요한 역사적 공간인 만큼 폐허의 순간이더라도 그것을 인위적으로 정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시를 진행했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작가의 작품이 함께 전시가 되어 그것들이 갖는 의미와 전시작품의 메시지가 온전하게 전달될 것이라고 했다.

어둠 속에서 공간이 주는 공포심을 견디다 보면, 작가가 의도한 미학적 체험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천장에는 ‘별자리’가 새겨져 있고 나뭇잎의 그림자가 다시 그림자를 만들면서 이강하 작품 위에 그림자를 만든다. 겹쳐진다. 실루엣 위에 실루엣, 그림자 위의 그림자이다.

그리고 작가가 숨바꼭질처럼 꽁꽁 숨겨놓은 ‘STILL LIFE’에서 전시는 끝이 난다. ‘STILL LIFE’에서 순간 숨을 멈춘다. ‘아직도 생은’.

스틸 라이프

광주에 살면서도 그 존재 자체를 잘 몰랐던 아니 도심 한 복판 우리 일상 속에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더 알지 못했던 (구)국군광주병원. 그 은폐의 공간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더 자주, 더 많이 이 공간을 기억해야 한다. 치욕의 역사를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이성의 시작, 윤리의 시작,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전시를 관람하려면 저녁 7시까지 (구)국군광주병원 앞으로 가면 된다.

(주소) 광주시 서구 상무대로 1028번지

백은하 기자 haklim1@hanmail.net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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