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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 ‘영흥 식당’ 문 닫는다

기사승인 2018.07.17  08: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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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시인·화가·연극인들 모여 젓가락 두들기며 막걸리잔 기울이던 곳

지난 32년간 '예술의 거리'에서 광주 문화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영흥 식당'이 오는 7월 말일자로 문을 닫는다

광주광역시 궁동 ‘예술의 거리’ 인근에 특별한 식당이 하나 있다. 식당이라기보다는 허름한 선술집에 더 가까운 ‘영흥 식당’이 그곳이다. 원래 지금의 예술의 거리는 수예점과 막걸리집들이 즐비한 동네 골목이었다. 인근에 있는 전남여고생들의 가정 과목에 수예 수업이 있어 수예점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인근 남금동과 대인동에 주조장이 있어서 대폿집도 함께 성행했다. 서울의 피맛골과 같은 곳이었다.

수예점들은 오늘의 화랑이 되었고, 그 많던 대폿집들은 전남도청과 광주동구청이 이전하게 되면서 대부분 사라지고 영흥 식당만이 흘러간 옛 영화의 추억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흥 식당의 안주인 임병숙(70) 씨가 주방에서 어머니 손 맛을 내고 있다

영흥 식당은 자연스럽게 예술의 거리를 드나들던 가난한 예술인들의 비밀 아지트가 되었다. 많은 예술인들이 배고픔과 외로움을 달래고, 엄혹했던 시절 서로의 안부를 묻기 위해 영흥 식당을 찾았다. ‘영흥 예술대학’ 또는 ‘영흥 주점대학’으로 부르며 자유롭게 서로의 예술관을 털어놓고 토론하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 척박한 예술계의 현실을 토로하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때론 젓가락 장단에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던 곳이다.

그렇게 32년간 예술의 거리에서 광주의 민주인사, 문화 예술인들과 동거 동락하며 ‘문화 싸롱’ 역할을 톡톡히 했던 영흥 식당이 오는 7월 말일자로 문을 닫는다.

지난 1986년 문을 열었던 주인 임병숙(70)씨의 건강이 악화되었고 식당 건물이 매각되었기 때문이다.

영흥 식당의 주메뉴 가을전어 구이
살이 통통하게 오른 겨울 꼬막

영흥 식당은 광주의 가난한 문화 예술인들이 가벼운 주머니 걱정 없이 어머니 손맛을 즐기던 곳이었다. 전라도 음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꽃피는 봄이면 황실이 조림. 요즘처럼 뜨거운 여름날에는 고등어구이나 애호박 찌개. 낙엽 지는 가을에는 전어구이. 언 손 호호 불던 겨울에는 통통하게 살 오른 참꼬막으로 술꾼들을 호출해 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인근 금남로에서 정치 행사나 문화 축제, 각종 시위가 있을 때는 ‘영흥 예술대학’은 어김없이 예술인들의 메신저가 되어 주었다.

때론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몇 해 전 광주의 가장 큰 거리 축제인 충장축제 때 시낭송회가 있었다. 이때 오소후 시인(69)은 “··· 예술의 거리에서는/ 양은 주전자의 막걸리도 예술이다/ 예술의 거리에서는/ 이 가을밤 전어 굽는 냄새도 예술이다···”라고 그의 시 <예술의 거리에서는>을 낭송하자 관객들은 와! 하고 연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임남진 화백의 <풍속도Ⅱ-영흥 식당>(2006)

20년 넘게 영흥 주점대학을 다녔던 단골, 임남진 화백의 <풍속도Ⅱ-영흥 식당>(2006)도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작품 속에는 수많은 도시의 군상들이 희로애락이 담긴 각자의 열굴들을 숨기고 있다.

영흥 식당에는 광주의 애환이 담겨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는 밤새워 <목포의 눈물>을 수 백번 부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구 도청에 마련된 분향소에 오가실 때 광주분들은 우리 집에 들러서 막걸리 한 잔씩 하고 울고 그랬지요. 두 분의 장례기간 내내 영흥 식당도 분향소의 일부처럼 돼버렸지요. 해마다 5월이 되면 사람들이 끝도 없이 몰려들어 토론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여하튼 정신이 없었어요” 라며 영흥 식당 안주인 임병숙 씨는 한때를 회상했다.

그렇게 갤러리, 예술대학, 영흥주(酒)립대학으로 불리며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던 영흥 식당이 사라진다니 그동안 단골로 드나들었던 지역 문화 예술계 인사들은 섭섭함을 표현하고 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고발한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쓴 광주의 원로 김준태(70) 시인은 SNS에 “1980년대 중반부터 30여 년간을 함께 해온 고향집 같은 식당을 보내야 하니 마음이 아프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이 골목을 점령한 요즘 시대에 전라도 고유의 방식을 고집한 맛과 저렴한 가격을 한결같이 지켜온 식당이다. 지자체가 나서 지역사회의 문화재로서 보존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라고 덧붙였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도시의 정체성과 경쟁력은 크고 새로운 것보다는 낡고 오래된 곳에 숨어있다. ‘영흥 예술대학’은 광주 문화 예술인들의 마음속에 긴 여운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 금방 여름 가고 서늘한 가을 올 텐데, 올가을에는 어디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구워주는 전어구이를 먹을 수 있을까.

임영열 시민기자 youngim1473@hanmail.net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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