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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회진포의 된장물회 맛 보셨나요?

기사승인 2017.09.10  17: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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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최초다 -회진포 된장물회

여름에 먹는 음식을 꼽자면 다양한 보양식이 있지만 해안을 끼고 있는 각 지역의 음식 중에서 물회는 더운 여름을 나기에 적합한 음식이다. 물회는 원래 어부들의 음식이었다. 풍어를 이루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쁜 어부들은 속 든든하게 빨리 먹을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갓 잡아 올린 생선 중에 상품으로 내기 힘든 잡어들을 손질해 궁여지책으로 배에서 먹는 음식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여름철 별미 물회다.

된장물회

각 지역을 대표하는 물회

물회는 강원도의 고성·주문진·사천을 포함한 동해안 일대와 포항 그리고 경상도와 제주도 등지에서 특색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통상적으로 강원도식, 경상도식, 제주도식 물회로 구분한다. 그중에서도 물회하면 떠오르는 것이 포항식 물회다. 포항 물회는 도다리와 광어를 주로 사용하며 일반에 많이 알려졌다. 막 썰어서 먹는 일명 ‘막회’라고 부르는 횟감에 고추장과 갖은 양념을 섞어 쓱쓱 비벼먹은 뒤, 시원한 얼음냉수를 부어 국수나 밥을 말아서 먹던 것이 포항식 물회다. 포항물회의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 현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물회의 원조격으로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제주도에서는 고추장이 아닌 된장을 주로 사용한다. 전라도 음식의 영향 때문인지 제주도에선 대부분의 음식을 된장으로 간을 한다. 심지어 오이냉국도 된장을 풀어먹을 정도이고, 지방색이 짙은 제주 토종음식인 몸국 역시 된장 맛이 진하다. 제주도는 자리돔과 한치를 넣어 만드는 물회가 대표적인데, 뼈째 먹는 자리돔은 칼슘과 단백질이 풍부해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 그만이다.

강원도 물회는 초고추장으로 육수를 만들어 살짝 얼리거나 냉장시켜 사용한다. 초고추장에는 설탕, 식초, 감미료가 더해져 자극적인 맛이 강하다. 퓨전화 된 이 맛은 도회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의 입맛에 맞추다보니 달라진 모양새다. 강원도 주문진항에 가면 양념을 회에 직접 비비지 않고 육수를 따로 만들어 부어 먹는 물회가 대부분이다. 주로 참가자미를 사용한 물회가 많지만 오징어가 많이 나는 덕에 오징어 물회도 쉽게 볼 수 있다. 맵싸하면서도 시큼한 맛이 얇게 채 썬 오징어와 잘 어울린다.

물회는 싹싹 비벼서 양념이 횟감에 스며들을 때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시원한 물회를 먹고 남은 국물에 국수나 따뜻한 밥을 식기 전에 넣어 먹으면 밥알이 차가운 국물과 만나 졸깃한 맛을 더 해 준다. 물회가 대부분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 진 것으로 비춰보면 각 지역을 대표하는 물회는 아무래도 음식의 전통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 같다.

회진포 전경

전통을 고수한 장흥 된장물회

장흥 회진포에 가면 조상 대대로 즐겨먹던 된장물회가 별미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 훨씬 이전부터 먹어왔던 된장물회는 이 지역 사람들의 기억으로 어림잡아도 100여년은 훨씬 넘은 듯 보인다. ‘알 만한 사람은 모두 그 맛을 안다’는 장흥 회진포의 된장물회는 특별한 맛을 찾는 미식가들에 의해서 일반에 알려졌다. 된장물회는 뱃사람이 바다로 나갈 때 싸들고 간 열무김치가 시어지면 갓 잡은 생선을 회 떠서 물에 된장을 풀어 함께 먹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한다. 물회하면 알싸한 초장 맛을 함께 느끼는 게 당연하지만 이곳 된장물회는 적당히 삭힌 열무김치가 식초의 맛을 대신한다. 시큼하면서도 구수함이 느껴지는 물회는 바로 아삭한 식감의 열무김치가 포인트다.

장흥 회진포에서는 쑤기미라는 생선이 풍어를 이루면 마을은 온통 잔치 분위기에 휩쓸린다. 쑤기미는 동해안의 삼식이 같은 생선을 닮았지만 등줄기에 돋아난 가시에 찔리면 아주 치명적일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그 탄력적인 생선의 육질을 잘 손질하여 열무김치를 쑹덩쑹덩 썰어 된장으로 버무리고 나서 시원한 냉수를 부으면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된장물회가 완성된다. 여기서 된장은 생선의 비린내를 잡고 속을 편하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

회진면의 어촌마을에서 대대로 마을 잔치 때 먹어왔던 것을 1970년대 후반 회진포구에서 ‘목포집’이라는 옥호를 내걸고 할머니 한분이 영업을 시작하였다. 그 후 90년대 들어 된장물회를 판매하는 여러 횟집들이 생겨나 지금은 회진면의 우리횟집과 삭금횟집이 이와 맥을 같이 하는 말하자면 된장물회의 원조집이 되었다. 인공감미료에 익숙한 세대들에게는 다소 낯선 맛일 수도 있겠으나 나름 개미가 느껴진다.

다만 서로 원조집을 주장하는 이곳 음식점들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회진면 소재지의 우리횟집의 노인장이 선친을 따라다니며 배웠다는 물회는 우럭을 넣어 만들어 옛 맛을 느끼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고, 해안로에 있는 삭금횟집은 쑤기미라는 생선을 사용하지만 약간 현대식을 가미해 식초의 맛이 느껴지는 게 흠이다. 목포집 할머니의 된장물회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마냥 아쉬운 대목이다.

된장물회의 본향 회진포

된장물회 유명한 집 삭금횟집

된장 물회의 본향 격인 장흥 회진(會鎭)을 가려면 읍내에서 23번 국도를 타고 용산과 천관산이 펼쳐 보이는 관산을 차례로 지나야 한다. 그리고 다다른 회진은 장흥의 동남쪽 끝머리 바다에 면한 유서 깊은 고장이다. 조선시대 회령포(會寧浦)인 이곳은 정유재란 당시 명량해전을 앞두고 충무공이 전라우수사 김억추 등 부하 장수들과 비장한 결의를 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른바 ‘회령포 결의’다. 회진면소재지로 들어서면 복원된 회령진성이 우뚝하다. 바로 회령포 결의의 현장이다. 이곳에서 이순신은 칠천량 전투에서 후퇴한 배설에게 배 12척을 넘겨받아 조선 수군 재건의 교두보를 마련한다. 이순신이 조선수군 재건에 마침표를 찍은 회령포는 전라우수영에 소속된 수군만호가 주둔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여기에 진(鎭)이 설치된 것은 조선 초기였다. 평상시엔 식량과 군기를 쌓아두는 보급기지 역할을 했다.

회진마을에서 나와 선학동마을로 가면 벽화가 그려진 담장에서 문학의 향기를 맡는다. 소설가 이청준과 한승원의 고향임을 직감한다. 선학동은 지난 2008년 고인이 된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이 된 마을이다. 임권택 감독이 이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 '천년학'을 촬영했다. 의붓 남매인 동호와 송화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마을로 가는 길목에 영화 세트장이 남아 있다. 바닷가에 소나무와 어우러진 선술집이다. 그 너머로 노력도를 뭍과 연결시켜 준 회진대교가 보인다. 금당도, 거금도 등 크고 작은 섬도 가깝다. 선학동마을 너머 진목마을에는 이청준의 생가가 있다. 이청준은 남도사람들의 웅숭깊은 한과 소리를 소설로 풀어냈는데 소설 속에 그려진 마을도 그대로다.

그물을 손질하는 여인네들

살아생전 이청준이 고향에 오는 날이면 그의 동무들은 항상 된장물회를 사가지고 와서 소주 한 잔 기울였다고 한다. 된장물회는 마을사람들이 베푸는 인정이었고 소설가에게는 평생을 그리운 어머니의 손맛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된장물회의 유명세에 힘입어 장흥토요장터에는 한우 된장물회 까지 등장 했다. 기름진 한우고기의 마블링이 냉수와 결합되니 뻣뻣한 식감이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어 여간해서 맛을 모르겠다. 어디를 가더라도 현대인의 입맛을 고려해 퓨전화 되어가는 정체불명의 맛집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회진포 된장물회는 변함없이 선조들의 손맛을 지켜내고 있어서인지 개미진 그 맛을 알고 찾는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전통을 이어가려는 ‘개미진 맛’이 오래도록 전수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정지승 프리랜서 p61403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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