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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기사승인 2020.10.27  09: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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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엠자키] 늦가을에 읽는 한 편의 시, 나태주 시인의 ‘멀리서 빈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나태주 시인의 시 ‘멀리서 빈다’ 전문. 시집 <시인들 나라> 서정시학. 2010)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하늘은 한 층 높아지고 가로수의 나뭇잎들은 조금씩 푸른빛을 퇴색시키며 노랗고 붉게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가을이 곱게 곱게 피어나고 있지만 어딘지 모를 한구석이 서늘해져 마음의 옷깃을 여미게 되는 계절입니다.

지난봄부터 여름까지 왕성했던 생명의 순환이 점차 멈춰가는 순간들을 보게 되는 계절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찬 바람이 불고 낙엽 지는 늦가을이 되면 우수에 젖어 우울과 상실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평소 당연하게 보였던 사물과 사실들도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게 되는 정서적 공간이 넓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라고 단풍도 들고 낙엽도 지는 거라고.

말과 말, 글과 글들이 서로 살벌하게 부딪치며 선혈이 낭자한 하 수상한 세상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옵니다.

시나브로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멀리서 빕니다. 부디 아프지 마세요. 몸도 마음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짧은 시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이 2007년 생사의 고비에서 구사일생 기적적으로 살아나 쓴 시 <멀리서 빈다>였습니다.

멀리서 빈다, 부디 아프지 마라

임영열 기자 youngim1473@hanmail.net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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