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최초의 의병에서 최후의 의병까지 불원복의 땅

기사승인 2016.12.28  16:59:45

공유
default_news_ad1

- 호남역사교실 4 - 한말 호남의병사

호남역사교실 제4강 ‘한말 호남의병사’가 지난 26일 대동문화재단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순천대학교 사학과 홍영기 교수는 최초의 의병에서 최후의 한명까지 치열하게 살다간 의병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순천대학교 사학과 홍영기 교수

의병은 크게 구한말 의병과 독립군으로 나눠진다. 구한말 의병은 조선 부흥운동이었다. 일본의 관점에서 의병은 ‘폭도’였다. 호남지역의 의병은 일본의 특수부대가 투입되어 소탕작전을 벌일 정도로 화근이었다.

의병은 1895년부터 1915년을 전후한 시기까지 약 20여 년간 항일투쟁을 펼쳤다. 조선 최초의 의병은 장성의 기우만(1846-1916) 의병장이었다. 이어 최익현, 임병찬, 김천일, 심남일, 기삼연, 고광순, 김태원 등 죽음으로 항거한 사람들의 피가 전라도의 산과 들을 물들였다.

일제의 의한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은 사진첩으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침략자의 기록에 의하여 의병의 활약상을 보게 되는 뼈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조선 최후의 의병장으로 알려진 최형오가 1921년 순천에서 잡힐 때까지 전라도는 의병항쟁의 중심지였다.

'한국독립운동사'의 기록을 보면 전라도 의병은 일본군경과 교전회수 및 교전의병수에서 최고 47.2%와 60%를 기록하고 있다. 타 지역과 비교가 될 수 없는 투쟁을 전개했다.

우리가 담살이로 알고 있는 빈농출신의 머슴 안규홍 등 전라도는 양반에서 중인, 머슴까지 전 신분이 의병에 참여한 불원복(不遠復)의 땅이기도 하다.

매천 황현 선생은 ‘난세에 글 아는 사람 노릇이 힘들다’며 절명시를 남기기도 한 전라도 호남의병. 그 정신은 임진왜란의 자긍심을 되새겨주었다. 또한 반일투쟁으로 이어져 일제의 식민지정책과 조선 강점의 걸림돌이 됐으며, 국내 항일운동기지의 기초를 닦는데 공헌하였다.

전라도, 호남의 투쟁정신은 역사적으로 뿌리 깊게 이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난을 당하면 제일 먼저 일어나 마지막까지 항거했던 전라도의 호남의병. 그 치열했던 의병사를 잊지말자.

김을현 기자 somchanel@naver.com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김을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