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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록경장의 역, 항왜원조, 임진왜란의 또 다른 이름들

기사승인 2016.12.26  18: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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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역사교실3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임진왜란(1592-1598)을 일본 역사에서 보면 ‘문록경장의 역’이었고 중국 역사에서 보면 ‘항왜원조’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임진왜란을 ‘한중일 국제전쟁’ 혹은 ‘동아시아 3국 전쟁’ 등으로 표기하려 시도했지만 결국 임진왜란을 넘어서지 못했다.

호남역사연구원 김세곤 원장

2018년은 ‘전라도’ 정도 1천년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과 (사)대동문화재단은 특별기획한 ‘호남역사교실’을 열며 다시 한 번 지역사회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예향과 의향의 의미와 ‘약무호남 시무국가’의 뜻을 역사에서 찾아보고 호남이 나아갈 방향을 살펴보는 일이다.

첫번째 강의는 공주대학교 사학과 이해준 교수가 ‘호남 역사문화의 지역성과 정체성’으로 뿌리 깊은 호남인의 정신을 생각하게 했다.

두 번째 시간은 ‘한국 속의 전라도’ 대동문화재단의 조상열 대표의 강의가 이어졌다.

세 번째 시간으로 펼쳐진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은 호남역사연구원의 김세곤 원장이 맡았다.

“왜군은 닥치는 대로 가져갔다. 불상, 탱화, 서적 등 손에 닿는 것은 모조리 가졌다. 에도 막부는 전쟁에 져서 물러갔지만 일본의 경제, 사회, 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조선의 농토는 황폐화되고 인구는 1,300만에서 1,085만으로 215만명 감소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 그나마 전라도 호남사람들이 없었으면 조선의 운명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유성룡의 ‘징비록’에서 알 수 있듯이 임진왜란을 철저하게 반성하지 못한데서 정유재란이 재차 발발했고 그 후 312년이 지난 후 1910년에는 결국 일본에 강제 병합되는 치욕을 당했다.

김을현 기자 somchanel@naver.com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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