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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는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최옥수 사진전)

기사승인 2022.10.25  11: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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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현 대동문화 출판‧미디어본부장

백승현 대동문화 출판·미디어본부장

언제 떠올려도 마음을 울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어머니’다. 최옥수 사진작가의 이번 전시회의 섹션 중에는 ‘어머니’라는 소주제가 있다. 이를 주제로 어머니를, 혹은 어머니와 관련된 대상을 촬영한 사진 작품이 몇 편 전시되고 있다.

나는 이번 전시전의 사진마다 설명을 달아주는 역할로 참여했다. 최옥수 사진작가는 이 ‘어머니’ 섹션의 사진에는 특별히 사진 제목을 달지 말고, 다만 어머니에 대한 시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문구를 달아보자고 했다. 나도 그 의견에 공감해 ‘어머니’를 주제로 시를 한 편 써서 그 문장들을 잘라 사진 설명을 대신하기로 했다. 나는 입말로 이렇게 썼다.

<엄마는 늘 그 자리를 지키셨어. 가족이 엄마의 종교였어. 웃음도 눈물도 다 엄마 몫이었고, 우리들이 엄마의 손금을 닳게 했어. 뼈와 살을 삭아내리게 했어. 엄마는 늘 자식에게 주고 늘 빈손이었지. 어머니는 다시 세상에 나가 싸울 힘을 주셨지. 내가 세상과 잘 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를 낳았고 기르면서 엄마 아빠가 됐어. 그래도 엄마는 그 자리를 지키셨어. 바다만큼 큰 엄마의 자리를….>

이번 전시회 작품에 등장하는 어머니들 대부분은 저세상에 계실 것이다. 나는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면식도 없는 이들의 사진 설명을 쓰면서 조금 눈시울을 적셨다. 내가 그 어머니들이 살아낸 삶의 진폭과 마음을 십 분의 일이라도 공감했을까? 부끄러움과 동시에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전라도 삶의 원형 담은 공감의 파노라마

나와 최옥수 사진작가는 문화잡지에 글을 쓰는 기자와 사진 찍는 사진작가라는 인연으로 만난 지 벌써 20년이다. 최옥수 사진작가는 나와는 13살 터울인데, 20년이라는 세월만큼의 공감으로 뭉친 ‘막강한 사이’이면서도 그를 형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기에 그는 사진뿐만 아니라 광주, 서울을 아우르며 문화 예술판의 흐름을 조망하는 문화기획자로서의 능력이 뛰어난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릇처럼 예전 대학에서 강의하셨던 기억을 떠올려 ‘최 교수님!’ 이렇게 부른다.

그래서일까? 잡지를 만들며 서로 글 쓰고 사진 찍어 글과 사진 사이의 간극을 이어붙이는 이 일에서, 우리는 그동안 그 많은 시간을 함께했으면서도 의견 충돌이 전혀 없었다.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

지난 2018년에는 최옥수 작가와 함께 <행복한 추억의 앨범>이라는 포토에세이 책을 냈다. 최 작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 사진학과 진학을 위해 ‘야시카(YASHICA)’ 카메라를 든 이후 50년 동안 ‘저널리즘 다큐멘터리’ 사진을 촬영해왔다. 포토에세이는 그 작업의 일환으로, 전라도 문화예술인들의 인물 사진과 전라도민들의 삶의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었다. 전라도 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기억, 전라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흑백사진을 최옥수 작가가 골라주면, 나는 그 사진 속 오래전 인물이 수십 년 전 그 사진이 촬영될 시기에 이런 말들을 했을 거라고 상상해 전라도 탯말(사투리)의 대화체로 적어보는 식이었다.

남도 사람들의 공동체 언어인 전라도 탯말은 고향의 언어이고 어머니의 낱말이다. 그런 말 속에는 공동체의 생활과 의식이 살아 숨 쉬는 뿌리가 있다. <행복한 추억의 앨범>은 이 탯말로 글을 쓰고 사진으로 우리 옛 삶의 흔적을 기록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렇게 시간과 시간이 이어지고, 사진 속 인물과 현대의 인물이 중첩되며, 이야기와 이야기가 얹어지는 콜라보 형식의 포토에세이 책인 <행복한 추억의 앨범>이 나오게 되었다.

책에는 신안 항구의 뱃전에서 노는 벌거숭이 아이부터 낙안읍성의 초가지붕을 이는 80대 노인까지, 서해 영광 법성포구부터 구례 섬진강까지, 남도인의 삶의 다채로움이 흑백사진에 담겼다. 강과 바다, 역과 항구, 장터와 학교, 탄광과 시장의 모습이 추억과 함께 되살아난다. 신랑 신부, 동자승, 붕어빵 장수, 장터 약장수까지 남도 사람들의 삶이 흑백사진으로 펼쳐지고 있다. 모두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의 남도 풍경과 사람들의 표정이다.

어머니, 고향, 친구라는 말은 참 어려워

하지만 한 권의 책으로는 못다 한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다. 그때 책자에 싣지 못한 많은 작품들이 이번 전시회에 등장했다. 그는 전라도인이 보여주는 삶의 다양한 면면을 고유한 방식으로 기록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최옥수만이 가능한 사진으로 이번 작품전이 열리게 된 것이다. 전라도의 가치와 정신을 전달해주는 매개로서도, 전라도 풍속의 기록과 우리 추억의 이야기로서도 최옥수 사진전의 가치는 빛날 것이다.

그의 사진은 전시를 보는 관람객들에게 되살아나는 시간의 생명을 준다. 우리가 간직한 기억에 예술적인 깊이를 더한 사진을 보며 관객들은 언어를 넘어선 공감으로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질 것이다. 그 공감의 언어들은 ‘고향’, ‘어머니’, ‘친구’, ‘추억’, ‘유년’, ‘아늑함’ 등과 같은 것일 테고, 그 삶은 가난하면서도 풍성했던 마을과 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삶이 그려지던 배경은 전라도 들녘, 강, 바다, 산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전라도 사람들의 숨결과 숨소리’가 이번 전시회의 근원적인 주제이다.

‘인생을 관찰하고, 세계를 관찰하고, 큰 사건들을 목격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동시에 거만을 떠는 사람들의 얼굴을 관찰한다. 인간의 업적을 관찰하고, 그것으로 기쁨을 얻는다. 보고 놀라고, 보고 배운다, 또 본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 1936년 창간된 매거진 <LIFE>의 슬로건이다.

예술은 보는 기술에서 시작하고 보는 기술에서 끝난다. 우리는 본다. 보고 놀라고 배우고 또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 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새롭다면 그는 훌륭한 예술가다. 인식을 확장시키는 놀라움을 주기 때문이다.

<뿌리깊은 나무>라는 문화잡지를 낸 한창기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 경험이 많은 할머니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바늘구멍이 손녀의 눈으로는 보일 수도 있다. 어른이 모르는 산수의 개념인 집합을 초등학생이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예술가는 이런 놀라운 관점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인생의 관찰을 통해 인간 세상에 대한 깊은 존중을 표현하는 사진작가가 깊이 있는 작가라고 믿고 있다.

행복한 추억 여행 함께 가실래요

한편, 이번 사진전에는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담긴 작품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시대성을 반영하는 작품에서만은 오히려 어깨의 힘을 빼고 담담한 자세를 취하며 남도 사람들의 일상 속 행복한 표정을 담았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어둡지도 우울하지도 않다. 그리움이 환기해주는 정겨움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 향수가 자신의 현재를 재발견하게 만든다. 추억은 오늘로 이어지고, 오늘은 반드시 내일로 나아간다. 시간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잠시 자신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재발견하게 해주는 사진전, ‘행복한 추억 앨범’이다.

모두가 따사로이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해 우리는 오늘도 길을 나선다. 새로운 추억이 새록새록 우리의 등 뒤에 발걸음으로 찍힌다. 나는 최옥수 작가와 그 길을 함께 걸어왔고, 다시금 또 새로운 길에 나설 것이다.

이 사진전을 관람한 후 어머니와 고향의 안부를 확인하고 더 힘차게 살아갈 힘을 다시 얻을 당신들이 지금 이 자리의 주인공들이다. 사진 속 예전 주인공들도 그것을 보고 있는 현재의 관객들도 시공을 뛰어넘은 공감의 따스함이 마음을 물들일 것이다.

대동문화재단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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