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봄비에, 봄바람에 꽃잎 ‘우수수’...봄날은 간다

기사승인 2021.04.13  11:39:07

공유
default_news_ad1

- [포엠자키] 꽃잎 진다고 서러워 말아요...낙화의 계절에 읽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시인의 <낙화> 전문. (시집 <적막강산> 1963)

꽃은 피면 지게끔 되어 있는 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꽃이 떨어진다고 서러워할 일은 아닙니다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 되면 야박한 사람들의 인심과는 다르게 세상은 LED 전등을 켜 놓은 듯 잠시 잠깐 동안 환해집니다.

옛사람들은 이를 두고 ‘화개천지홍(花開天地紅)’이라 했습니다. 꽃들이 피어나니 하늘도 붉고 땅도 붉다는 말입니다.

질서 속에서 운행하는 모든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 꽃이 피어나는 '절정의 순간'은 지극히 짧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자연의 일부인 인생사를 우주의 시간으로 비교해 본다면, 우리 한평생이 불과 0.3초에 지나지 않는다 합니다. 눈 깜짝할 새입니다. 인간의 한평생이 이럴진대 하물며 ‘꽃의 순간’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영원한 아름다움이란 없다 했습니다. 짧아서 아름다운 ‘꽃의 계절’이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화락천지정(花落天地靜). 꽃이 지고 난 빈자리에 ‘고요한 아름다움’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꽃은 피면 지게끔 되어 있는 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꽃이 떨어진다고 서러워할 일은 아닙니다.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가고 있다고 탄식할 일만은 아닙니다.

축복에 쌓인 낙화는 무성한 녹음과 머지않아 열매 맺는 풍성한 가을을 향해 꽃답게 죽는 청춘 이므로.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한 이형기 시인(1933~2005)이 25살 때 쓴 시 ‘낙화(落花)’였습니다.

이형기 시인(1933~2005). 1933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하여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17살 때 등단해 한국문단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시인이 됐다. 1950년에 『문예』지에 시가 추천되어 등단했다. ⓒ시공사

임영열 기자 youngim1473@hanmail.net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임영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